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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섭 컬럼> 목숨 걸고 사선 넘다

충성은 아직도 유효⑧

김관섭 | 기사입력 2021/05/26 [19:05]

<김관섭 컬럼> 목숨 걸고 사선 넘다

충성은 아직도 유효⑧

김관섭 | 입력 : 2021/05/26 [19:05]

 

 

 ▲ 김관섭 월남 귀순용사

월남 귀순용사 김관섭(86)옹께서 5년전인 2016년 “나는월남 귀순용사다”라는 자서전을 출간했다.그 자서전의 내용을“안산신문”에 연제한다

 

1974년 8월 26일 ~ 1978년 3월 까지 대성공사(6073 부대) 귀순자 합동심문소에서 가혹한 고문과 인권유린으로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당하면서도 오직 대한 민국에 충성하겠다는 일념으로 북한 정보제공에 앞장섰다.

 

나는 북한군 중대장(대위)으로 목숨걸고 한강하류를 약 7시간 동안 헤엄쳐 자유대한민국의 품에 안겨, 북한의 핵 정보를 비롯한 고급 군사정보 129건을 제공하여 한국군 전투력증진과 사기 함양에 기여했고, 150여회의 대북 심리전 방송을 진행하여 북한 군인들의 귀순과 주민의 탈북에도 도움을 주었다.

 

•귀순자 합동심문소 생활도 모범적으로 하였다

 

북한 정보를 제공하는 일도 열심히 했을 뿐만 아니라 수용생활에 불만을 가지고 북한 정보제공에 비 협도적이었던 일부 귀순자들을 수용소 생활을 잘하도록 도와주고 심지어 북한으로 되 돌아 가겠다고 억지를 쓰던 북한 어부 오이섭씨를 여러 차례 설득하여 대한민국에 정착시켜 자유인으로 생활 할 수 있게 한 것은 지금와 생각해도 보람있는 일이다.

 

1977년 11월경 정보사령부 주선으로 진양화학 주식회사에 입사, 초봉 16만원을 받으면서 약 1년동안 열심히 일했다. 그런데 중앙정보부에서 북한실상을 폭로하는 반공강연을 요청해와 진양화학을 그만 두고 반공강연에 전념했다. 목숨을 걸고 귀순했는 데도 수사미숙으로 적지않은 불이익을 받았지만, 대한민국을 위해 신명을 받쳐야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열심히 뛰었다.

 

월평균 40만원이 봉급과 강사료를 가지고 생계를 유지하면서 약 30년동안 국정홍보위원, 민방위 소양강사, 통일부 통일교육전문위원, 서부지역관리공단 통일안보강사, 한국자유총연맹교수,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자문위원 및 통일안보강사, 인천광역시 근로청소년 통일안보강사로 주민, 학생, 군인, 경찰, 공무원, 근로자들에게 북한의 대남전략과 김일성 주체사상의 허구, 북한 주민들과 노동자들의 비참한 생활상을 폭로하고 자유민주주의 우월성등 국민안보의식을 고취시키는데 최선을 다해 왔습니다.

 

그리고 약 30년 동안 국민안보교육을 진행하여 국민안보의식을 고취시켜 국가안보와 국민안보의식고취에 일조함으로써 자유민주주의 수호에 앞장서 왔다.

 

이런말을 하지 않으려고 늘 다짐했지만 나에게 국가에서 보살펴준게 무엇인가를 말하지 않을수없다 생활보장책으로서 정착금 일백만원과 진양화학에 입사시켜준것 그리고 아파트 값이 50%를 지원해준 13평아파트가 전부였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수가 없다. 솔직히 말해서 30년동안 안보강연을 하고 받은 사례금이 지금까지 살아온 생계수단이다.

 

1980.6~1982.11 월까지 경기도 부천시 소사동에서 거주할 당시 홍길동(가명,50세)이가 나에게 매일 술과 향응으로 접대하였었고, 심지어 가끔씩 10만원짜리 수표를 주면서 생활비에 보태쓰라며 극진한 친절을 베풀면서 환심을 샀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나를 친동생처럼 보살펴 주는 척 하면서 4차선 도로변에 소유하고 있었던 내 재산인 상가주택(당시 시가 2억 상당)을 가로채기 위하여 사전에 철저히 준비된 사기기만전술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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