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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대부도의 역사

이 현 우/안산향토사연구소장 | 기사입력 2024/02/27 [21:54]

<기획특집>대부도의 역사

이 현 우/안산향토사연구소장 | 입력 : 2024/02/27 [21:54]

 

  대부도의 옛 사진

 

1. 선사시대의 대부도

1984년 국립박물관에서 대부도와 선감도에 대한 고고학적 지표조사에서 선감도에서는 뚜렷한 선사유적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대부도에서는 흘곶과 말부흥에서 각각 1곳의 신석기시대 패총(貝塚)을 발견하여 빗살무늬 토기 파편 20점과 타제석기(打製石器) 1점을 채집하였고, 대부중학교에서 흘곶 등에서 출토된 것으로 전하는 마제석부(磨製石斧) 1점을 확인하였다.

 

패총에서 나오는 조가비의 90% 이상이 굴 껍데기였다.

 

2000년 경기도박물관에서 재조사를 실시하여 대부도와 남쪽 탄도에서 신석기시대 조개더미 8곳을 추가로 확인하였다.

 

 

  이현우 사진


대부남동인 흘곶에서 2군데, 중부흥과 말부흥에서 각각 1군데, 대부북동 구봉이에서 2군데, 구봉이 회센터 뒷산 언덕에서도 1곳이 발견되었으며 선감동 탄도 1군데에서 조사되었다,

 

 

대부도 홀곶 조개더미에서 출토된 빗살무늬토기는 서해안 지역과 공통된 위의 2종류의 토기가 모두 나오고 있으며 몸통부분에 무늬가 없는 것이 출토된 것으로 미루어 몸통 아래의 무늬가 생략된 형식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을 토대로 이 유적의 연대를 신석기시대 중기로 잡고 있다.

 

그리고 다른 서해 도서지방에 비해 사냥이나 농경에 쓰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타제석기, 마제석부 등이 출토된 사실을 가지고 당시 주민들이 굴 채취 등의 어로활동 이외에도 사냥,원시농업 등에 의한 식량획득도 하였을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하였다.

 

한편 흘곶 패총과 말부흥 패총은 공통적으로 바닷가에 가까운 구릉의 비탈을 택하여 위치하고 또한 남향을 기본으로 하고 있는데 이것은 당시 사람들의 생활근거지가 바닷가의 강한 바람을 막아줄 수 있는 구릉을 뒤로하고 양지바른 남향 터에 자리 잡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한다.

 

이처럼 대부도에는 늦어도 신석기시대 중기에는 서해안 지역의 신석기시대 주민과 같은 계통의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으며,이들은 주로 굴 채취를 하면서 한편으로는 수렵과 원시농경에 종사하였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겠다.

 

대부도 지역에는 선석기시대를 이은 청동기, 초기 철기시대에도 주민들이 계속 거주하고 있었을 것이라 짐작된다,

 

 

한국문화유산연구원에서는 2011년 5월 19일부터 2012년 6월 15일까지 안산도시공사에서 시행하는 안산 대부동주민센터 우회도로 개설공사 문화유적에 대한 정밀 시·발굴조사를 진행하였다.

 

대부동주민센터 우회도로 개설공사에 대한 지표조사는 2008년 2월에 (재)한국선사문화연구원에서 문헌조사 및 지표조사를 진행하여 패총과 기와·자기편이 수습된 유물산포지가 확인되어 패총과 유물산포지에 대해서 공사시행 이전에 시굴조사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되었다.

 

이러한 지표조사 결과에 따라 2011년 5월 18일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 2011년 5월 19일부터 안산 대부동주민센터 우회도로 개설공사에 대한 시굴조사<11,176㎡(약 3,381평)> 에 착수하였다.

 

시굴조사를 실시한 결과, 빗살무늬토기편과 석부, 갈돌이 확인되어 확장 조사를 실시, 신석기시대 주거지 3기가 확인되었다.

 

이 후 2011년 9월 28일 관계기관과의 협의와 문화재청의 변경허가를 거쳐 발굴조사를 착수하였으며 2012년 4월 2일부터 추가 확장발굴조사에 착수하였다.

 

발굴조사 결과, 신석기시대의 주거지 19기를 비롯하여 수혈유구 2기를 확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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