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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선/수필가> 비올라의 꼬임에 놀아난 재즈

이계선 | 기사입력 2021/05/26 [18:17]

<이계선/수필가> 비올라의 꼬임에 놀아난 재즈

이계선 | 입력 : 2021/05/26 [18:17]

 

 

▲ 이계선  /수필가
계간 <스토리문학> 시부문 등단 계간 창작산맥 <수필> 등단.성호백일장 <산문>입상. 안산문인협회 회원,안산여성문학회 부회장,풀잎문학회 부회장,한국스토리문인협회 회원, 문학공원동인    

 

거리마다 초록 향기가 코와 눈을 현혹하는 5월의 밤, 예술의전당 입구는 북새통이다. 예술의 기운을 받기 위한 발걸음일까? 평일인데 후끈 달아오른 열기로 뜨겁다. 야외 분수엔 음악과 어우러진 파동이 현란한 기교로 춤사위를 보이며 오가는 이들의 귀와 눈을 사로잡는다. 여름으로 접어든 봄의 끝자락이어서 그럴까? 사람들의 옷차림도 음악만큼 경쾌하고 산뜻하다.

 

이상회 비올라 독주회 티켓을 신청하고 일주일 전부터 동행할 사람을 찾았으나 결국 혼자다.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사는 가구가 늘면서 혼술이니 혼밥이니 하는 단어가 낯설지 않다. 평소에 혼자 영화나 등산 특히 공연장을 가지 않았기에 마지막까지 동행자를 찾았지만 허사다. 상록수역에 주차하니 지하철 한 대가 승강장으로 진입한다. 다음 열차에 오를 수밖에. 사당역에서 2호선으로 교대역에서 3호선으로 남부터미널역에 내려 마을버스로. 환승이 이어지면서 '더 나이가 들면 혼자 다니지 못하겠다.'라는 생각이 들 만큼 지하철 환승은 정신을 쏙 빼놓는다. 사실 사당역에서 잠실 방향을 찾지 못해 계단을 두어 번 오르내렸다. 시간과의 싸움에서 허둥거리다 공연 시간을 놓칠까 조바심 났다.

 

나는 노래를 부를 때 중. 저성부 파트를 담당한다. 합창과 중창은 음색으로 포지션을 정하는데 아름다운 하모니를 위해서 포지션은 중요하다. 그래서일까? 고음인 바이올린보다 저음을 다룬 악기에 더 감동을 느낀다. 비올라는 첼로보다 가볍고 바이올린보다는 부드럽고 깊은 음색이기에 마음이 간다. 혼자서 서울까지 발걸음을 내딛게 된 이유인지 모른다.

 

공연 전, 진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으로 더위와 가쁜 숨을 달래고 여유 있게 공연장으로 들어섰다. 어라! 무대에는 콘트라베이스와 연결된 모니터 스피커가 있고 세팅된 드럼이 보인다. 물론 피아노는 기본이고. 서둘러 팸플릿을 열어 출연진을 자세히 살핀다. 기대한 클래식 연주가 아니다. 기대치가 달라진 것이다. 객석에서도 비슷한 반응의 웅성거림을 엿볼 수 있다.

 

연주 시작을 알리는 소리가 여운을 남긴다. 비올라 독주회에 붙은 부제는 'with for us'다. 이윽고 큰 박수갈채를 받으며 네 명의 출연자가 입장한다. 빨강 드레스와 검은색 슈트를 입은 연주자들 의상은 재즈 분위기를 물씬 느끼게 한다. 오프닝 곡 연주 후 주인공인 비올라 주자가 마이크를 잡는다. 오늘 공연은 정통 클래식이 아닌 재즈와 비올라의 만남이 이뤄낼 소통을 위한 것이라고. 부제 '우리'는 너와 나의 관계가 둘에서 끝나지만 셋 이상이 되면 둘만의 상호작용을 넘어 소통하는 단계에 이르는 의미라고. 자기주장이 강하고 자기만 옳다는 우리 사회에 이번 공연을 통해 소통과 화합의 장을 선보이겠다고. 그리고 클래식 연주는 중간에 박수를 치지 않지만 재즈 연주는 연주자들의 솔로가 있을 때마다 아낌없는 박수가 응원이 된다고.

 

이동하는 현악기 중 가장 덩치가 큰 콘트라베이스는 연주 내내 전혀 활을 쓰지 않았다. 피치카토 주법으로만 울림통을 자극하여 리드미컬한 바운스로 울림을 전했다. 특이한 연주가 아닐 수 없다. 나중에 알았지만 아예 활 없이 입장한 것이다. 그윽하고 깊게 긴 활을 이용해 자신의 존재감을 뽐내지 않고 둥 둥 둥 두둥둥 둥둥. 비올라의 음색에 보조를 맞춘 적절한 사운드로 덩치 큰 자신을 고집하지 않는다. 오직 듬직한 겸손을 전달할 뿐이다. 드럼은 어떤가. 스틱 하면 딱딱한 나무 재질만을 연상한다. 이번 공연을 통해 나는 드럼에 문외한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이색적인 스틱으로 연주하는 음악을 만났기 때문이다. 모두 세 종류의 스틱이 사용되었다. 기본 나무 스틱과 팀파니 연주에 쓰이는 끝에 솜이 붙은 것과 부채를 접은 빗자루 모양의 스틱이다. 깨 볶듯 사각거리는 음색을 보인 그 부채 모양의 부드러운 스틱에 눈길이 고정된다. 스틱이 갖는 고유의 재질에 따라 주법도 다르고 특이한 질감의 음악을 전한다. 드럼은 세 개의 심벌즈와 세 개의 크고 작은 북으로 구성되었다. 스틱으로 몸통을 쳐 둔탁한 볼륨을 보이다가 이내 중앙부를 터치하며 가죽이 주는 푸근한 리듬을 믹스한다. 우당탕탕 시끄럽지 않고 음악 전반에 리듬감을 주도하며 특유의 음색을 조화롭게 발산하니 다채로운 주법의 묘미에 푹 빠져들게 한다. 빗자루 스틱이 어른거려 집에 돌아오자마자 드럼 스틱을 검색하였다. 우드스틱. 로드스틱. 말렛스틱. 브러쉬스틱 4종이 있다. 그 쓰임이 연주 장소나 음악의 종류에 따라 다르게 사용됨을 알게 되었다.

 

익히 아는 곡에서 만난 클래식 느낌과 재즈의 변주는 사뭇 다르다. 콘트라베이스의 장중한 울림과 3종 스틱을 교차 사용하며 빚어내는 드럼의 아기자기한 리듬감, 피아노 선율과 비올라가 주고받는 열정이 음악을 더욱 다채롭고 재미있는 이야기로 엮으며 끌어간다.

 

비올라는 솔로 악기가 아니다. 반드시 친구가 필요하다. 보통은 피아노가 절친을 자처하며 비올라 선율을 돋보이게 한다. 그러나 이번 연주는 오리지널 비올라 작품이 아닌 여섯 개의 클래식 곡을 편곡해 선보였다. 비올라를 포함한 4종의 악기를 위해 편곡하여 장르의 화합을 시도한 새로운 음악이다. 악기마다 각자의 색깔을 주장하고 고수하는 리듬의 독창성을 살려주면서 서로 어울러내는 울림이 신선하다. 기본 클래식에서 주선율만 남기고 음악에 새 옷을 입혔다고나 할까? 아니면 전에 만나던 상대를 더이상 만나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는 방식이기도 하다. 클래식을 대중과 더 가깝게 연결한 편곡자의 가교 역할이 눈부시다. 중매쟁이의 역할이 대단하다. 초여름 음악을 사랑하는 객석을 향해 바람난 비올라를 고운 시선으로 보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앞으로 클래식 애호가들이 재즈 음악에 보내는 관심과 시선이 점차 다를 것으로 예상된다. 많은 악기들이 서로 교류하여 바람난 소식을 자주 듣고 싶다. 끝으로 비올리니스트가 새로운 시도의 연주를 위해 방음된 재즈 연주자들의 연습장으로 직접 찾아가 연습하며 식사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하나 된 마음으로 오갔던 깊은 호흡, 눈 사인을 주고받는 장면이 뇌리에 두고두고 새겨진 음악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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