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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필선/수필가> 독사에 물린 장모님

오필선 | 기사입력 2021/05/13 [11:58]

<오필선/수필가> 독사에 물린 장모님

오필선 | 입력 : 2021/05/13 [11:58]

 

 

▲ 오필선/수필가
「대한문학세계」시, 「한국산문」수필 등단
(사)한국문인협회 회원
(사)한국문인협회 안산지부 전 사무국장
대한문인협회 회원
대한문인협회 경기지회 홍보국장
“시를 꿈꾸다” 문학회 운영위원

 

전화를 받는 아내의 눈에서 왕방울만 한 눈물이 쏟아진다. 펑펑우는 아내를 보며 잔뜩 긴장하고 전화가 끊어지길 기다렸다. 장모님이 고추밭에서 독사에 물려 입원하셨는데 사경을 헤매고 있다는 소식이다. 통곡하는 아내를 위로하며 서둘러 안동으로 길을 나섰다.

 

시골의 부모님들이 그러하듯 장모님 또한 농사를 천직으로 알고 살아오셨다. 장인께서 돌아가시고 홀로 안동에서 농사를 지으며 산다. 몇 년 전 장인도 고추밭에 농약을 주시고 언덕을 오르던 경운기를 운전하다 뒤집혀 목숨을 잃으셨다. 그런 일이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고추밭에서 독사에 물려 장모님이 위독하다고 하니 청천벽력이 아닐 수 없었다. 고추는 빨갛고 탐스럽게 익어 수확하는 기쁨을 누려야 할 계절에 아내를 진저리치게 했다. 안동으로 내려가는 내내 장모님의 건강을 염려하는 통화는 계속되었다.

 

장모님은 독사에 물려 정신이 없는데도 홀로 병원을 찾으셨단다. 동네 모든 사람이 밭일을 나가 텅텅 비어버린 시골에서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처지였다. 119나 경찰에 휴대전화로 신속하게 도움을 요청해야 했지만 그럴 경황도 없었으리라. 그렇게 홀로 버스를 타고 한 시간이 넘게 걸려 병원에 도착해 진료를 받았다고 한다. 자식을 넷이나 두고도 아무에게도 연락하지 않았다. 별일이 없을거란 생각에, 혹시라도 자식들이 알면 걱정으로 폐가 될까 염려한 탓이었다. 독사에 물린 첫날이라 대수롭지 않겠거니 생각하곤 바로 다음날 퇴원하리라 생각하셨단다. 게다가 응급 진료를 마치고 배가 고프던 중에 입원 환자의 보호자가 가져온 빵까지 얻어 드셨다. 다리에 퍼진 독기와 허기진 배에 급하게 드신 빵이 급체해 복통과 설사로 무섭고 힘겨운 밤을 보냈다.

 

하룻밤의 복통과 설사는 별일도 아니었다. 독이 오른 다리는 허리의 두 배쯤은 퉁퉁 부어 버렸고 걸을 수조차 없는 처지가 되었다. 이 지경이 되고 나서야 장모님은 당신에게 잘못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는지 큰아들에게 자초지종을 알렸다. 큰아들 내외는 곧 안동으로 내려가고 점심쯤 되어서야 아내에게 연락이 왔다. 병원에 누워 계신 장모님은 차마 똑바로 바라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 엉덩이 부위까지 새까만 피멍이 들어 퉁퉁 부어오른 다리를보는 아내는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다행히 치료를 시작하자 부기가 빠지기 시작하며 안정을 찾았다. 병세가 호전되기 시작하자 장모님은 오로지 농사일 이외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다. 고추를 따지 않으면 밭에서 녹아내린다는 걱정으로 아픈 것은 뒷전이었다.

 

장정 내외가 농사를 짓는다고 해도 벅차고 힘든 밭일을 장모님은 혼자서 감당하고 계셨다. 고추, 참깨, 콩, 녹두를 한창 수확을 해야 하는 시기였다. 처제 내외가 주말에 일꾼을 구해 고추 수확을 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한 번만 수확하고 그만둘 일이 아니었다. 한 주가 지나자 통원 치료가 가능하다는 처방을 받고 퇴원을 하셨다. 퇴원한 장모님 마음은 더 급해졌다. 아직 거동도 자연스럽지 못한 터인데 하나라도 더 수확하려는 바지런함을 누가 말리겠는가.

 

결국 사남매가 주말에 안동으로 출동을 했다. 밭에는 지난주에 수확하지 못한 고추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서둘러 참깨를 먼저 베어 가지런히 묶어 놓고 고추를 따기 시작했다. 토요일 새벽부터 일요일까지 일꾼 세 명을 더 구해 수확하고서야 간신히 마칠 수가 있었다.

 

이틀간의 밭일을 하고 돌아오니 몸은 천근이 되었다. 온통 파스를 바르고 쑤시는 통증을 견뎌야 했다. 이틀간도 이토록 힘이 들고 벅찬 일인데 장모님은 평생을 하고 계셨다. 당신이 농사지은 작물로 자식들이 조금 더 편하게 지내길 바라는 마음뿐이다. 늙은 몸을 희생한다는 생각이 아니라 당연히 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 몸에 밴 까닭이다. 독사에 물려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자식들보다 더 많은 고추를 수확하려는 모습이 떠오르며 눈물이 앞을 가린다.

 

아내는 18년이란 긴 세월동안 시부모를 모시고 살았다. 10년을 넘게 병치레를 하시던 어머니를 정성으로 돌보던 아내였다. 부모님이 라고는 이제 홀로 남은 장모님뿐이어서 더 안쓰럽고 애틋할 것이다. 그러나 자식은 부모의 사랑 앞에는 그저 허울뿐임을 깨닫는다. 장모님의 한없는 자식 사랑에 그저 마음이 먹먹하다. 멀리 떨어져 있으니 특별한 도움을 드리지 못한 채 농사일을 힘에 부치지 않을 만큼 하셨으면 하는 마음과 당신의 사랑에 감사하다는 말만 되새길 뿐이다.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하루하루가 지나갔다. 그러다 충남 광천을 여행하던 중 문득 장모님 생각이 났다. 토실토실한 어리굴젓에 먹음직한 젓갈, 고소한 기름을 온몸에 바르며 바싹하게 익어가는 광천 김이 눈에 든다. 이것저것 주문을 해 한 박스 분량을 택배로 보내드렸다. 마을회관에서 친구들과 식사 하는 모습을 떠올린다. 며칠 후 아내가 해맑은 미소로 말을 건넨다. “엄마한테 젓갈하고 김 보내 줬다며?” “별거 아닌데, 광천 갔다가 조금 사서 택배로 보냈어.” 동네 할머니들의 사위 칭찬에 장모님의 입이 귀에 걸리셨단다. 덕분에 아내에게 후한 점수를 땄다.

 

다행히 올해부터는 힘에 부치는 농사를 짓지 않으신단다. 그렇다고 손을 놓아버릴 턱은 없다. 자식들 먹일 만큼 충분한 밭을 가꾸고 작물을 심어 보내 주는 것이 사는 낙일 테니까. 독사에 물려 온 몸이 새까맣게 죽어 가면서도 자식들 걱정할 생각에 연락도 못한 장모

 

님. 자식들 목구멍에 밥 한 톨 더 넣어 줄 생각에 힘든 줄 모르시는 분이다. 부모님의 사랑을 넙죽넙죽 잘도 받아먹는 자식은 늘 늦은 후회를 한다.

 

밥상에 냉이를 비롯해 고들빼기와 파김치까지 봄 향기가 가득하다. 물론 장모님이 발품을 팔아 보내주신 것들이다. 곧 안동 집에는 장모님을 닮은 봉선화와 채송화가 뜰 안 가득 곱게 피어날 것이다. 볕이 고운 날 손톱에 빨간 꽃물을 들일 장모님을 만나러 안동으로 가련다. 사랑한다는 것은 늘 소중하게 기억하고 살가운 소식을 나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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